(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설 속 인물들이 '기억의 공간'에 모여 앉아 서로의 삶과 생각을 나눕니다.)
동호 (목격자 소년)
저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눈앞에서 봤습니다. 도망쳤다는 죄책감 때문에, 저는 그 후 썩어가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그들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지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우리는 매일같이 파괴되는 자연의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고 숲이 불타는 것은 마치 그때 쓰러져 가던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지구의 지속가능 발전은, 죽어가는 것들의 곁을 지키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을 똑바로 마주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이라도 지켜주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 목격자인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대 (죽은 친구의 영혼)
저는 이유도 모른 채 죽었습니다. 제 목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죠. 지금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도 저처럼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베어지는 나무들, 플라스틱에 갇힌 바다거북들,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 그들에게는 목소리가 없습니다. 지속가능 발전이란, 바로 이 목소리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인간의 편의를 위해 미래 세대의 자원을 빌려 쓰는 것을 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그러나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들의 침묵 속 절규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의 발전은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할 겁니다.
은숙 (고문 생존자)
저는 살아남았지만, 그날의 폭력은 제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상처는 결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요. 지금 인류가 지구에 가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파괴된 열대우림, 한번 멸종된 생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구에 영원히 남는 상처입니다. 지속가능 발전은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을 하더라도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남기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미 생긴 상처를 인정하고, 더 이상 상처가 깊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폭력을 겪고 살아남은 제가 배운 생존의 방식이자, 우리가 지구와 함께 살아갈 방식이어야 합니다.
김진수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저는 그곳에서 더 강하게 맞서지 못했다는,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삽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의 위기를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편리함 뒤에 숨어, 누군가는 해결해주겠지 하며 방관하고 있죠. 이것은 그때의 저처럼, 행동하지 않는 죄책감을 미래 세대에게 영원히 남기는 일입니다. 지속가능 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책임’의 문제입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는 우리를 원망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과거를 바꿀 수 없듯이, 망가진 지구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무거운 죄책감을 미래에 떠넘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해야만 합니다.
선주 (말하기의 고통)
저는 제가 겪은 일을 말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기억을 꺼내는 것 자체가 다시 그 순간을 사는 것 같았기 때문이죠. 지금 과학자들은 지구의 위기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발표하는 데이터와 경고는, 어쩌면 그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증언’일지도 모릅니다. 지속가능 발전은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듣기 괴롭다고, 나와 상관없다고 귀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고통스러운 증언에 귀 기울이고, 그 증언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 그것이 기억의 무게를 아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동호 어머니 (남겨진 자의 삶)
저는 아들 동호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며 남은 날들을 살아갑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처럼, 우리는 미래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풍요가 미래 세대의 고통 위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우리는 부모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지속가능 발전은 결국 다음 세대를 향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깨끗한 물을 마시고, 푸른 숲을 보며,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그 소박하고도 절실한 마음이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파괴적인 발전을 멈추고 미래를 위한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더 이상 어떤 아이도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물려주는 것, 그것이 남겨진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