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넘어, 소설 속 인물들이 '율도국'의 원탁에 모여 대화를 시작합니다.)
홍길동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러움 속에서, 썩어빠진 신분 제도를 타파하고자 했습니다. 지금 보니, 이 시대는 인간이 자연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그저 이용할 자원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구의 지속가능 발전이란, 결국 자연을 우리의 근본이자 아버지로 다시 모시는 일입니다. 부패한 탐관오리들이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듯, 일부 국가와 기업들이 지구의 자원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활빈당을 조직하여, 파괴된 자연을 회복시키고 그 혜택이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지구 율도국'을 건설해야 할 때입니다.
홍판서
나는 길동이의 뛰어난 재주를 알면서도, 나라의 법도와 체면 때문에 그 아이를 끌어안지 못했소. 내 대의 명분에 갇혀 아들의 고통을 외면한 셈이지. 지금의 기성세대가 꼭 내 모습 같구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경제 발전'이라는 낡은 명분에 사로잡혀 미래 세대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 않소. 지속가능 발전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오. 나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법도와 제도를 바꿔 미래 세대인 길동이들이 마음껏 재주를 펼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춘섬 (길동의 어머니)
저는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제 자식이 겪는 서러움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몸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온전히 제 자식이라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지요. 지금 병들어가는 대지는 마치 제 모습과 같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낳고 길러냈지만, 인간의 탐욕 앞에서 신음하며 파괴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진정한 지속가능 발전은, 우리 모두를 낳아준 어머니, 이 대지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자식의 마음으로, 상처 입은 자연을 보듬고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활빈당 대표
우리는 굶주리는 백성을 외면하고 저들끼리 배를 불리는 관아를 털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정의는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지속가능 발전'을 외치면서도, 정작 부유한 나라들은 여전히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가난한 나라에 그 피해를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정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말로만 하는 구호가 아니라 행동입니다. 우리는 부당하게 부를 축적한 자들에게서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었듯, 환경을 파괴하며 이익을 독점하는 자들에게 '탄소세'와 같은 강력한 책임을 물어, 그 비용으로 고통받는 지역과 미래 세대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