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 안녕하십니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신 아홉 분을 모시고, '지구의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화두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1. 김범우 (중도적 지식인)
저는 좌도 우도 아닌,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았지요. 지금 '지속가능 발전'을 둘러싼 논의도 마치 이념 전쟁 같습니다. 한쪽은 극단적인 환경주의를, 다른 한쪽은 무책임한 개발주의를 외칩니다.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 기후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농민들을 외면하는 지속가능성은 또 다른 폭력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념의 중간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합니다.
2. 염상진 (이상주의 혁명가)
내가 목숨을 걸고 꿈꿨던 세상은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잘사는 세상이었소. 지금 지구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계급 문제'와 같소. 부유한 나라와 거대 자본이라는 '지주 계급'이 지구라는 '소작지'를 무한정 착취하고, 그 오염과 고통은 가난한 나라의 '소작농'들에게 전가되고 있소. 진정한 지속가능 발전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불가능하오. 생산 수단, 즉 지구의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는 구조를 타파하고, 모든 인류가 자원을 계획적으로 공유하고 관리하는 혁명적인 전환만이 유일한 해답이오.
3. 염미정 (비극 속 여성)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 잃었습니다. 제게 남은 것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뿐입니다. 지금 지구가 겪는 아픔이 제 마음의 상처와 같아 보입니다. 한번 파괴된 숲, 한번 멸종된 생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구에 영원히 남는 상처입니다. 지속가능 발전은 거창한 계획 이전에, 더 이상 상처를 만들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미 병든 자연을 치유하고, 더 이상 어떤 생명도 우리 때문에 아파하지 않도록 보듬는 것. 그것이 제가 바라는 유일한 것입니다.
4. 하대치 (행동하는 민중)
나는 복잡한 이론은 잘 모르오. 다만, 낫을 들고 밭을 갈아야 내 식구들이 굶지 않는다는 것만 알지. 지금 지구가 병들었다는디, 저 높은 양반들은 회의만 하고 앉았구려. 우리 같은 농사꾼들은 당장 땅이 말라가고 홍수가 나서 죽을 맛인디. 지속가능 발전은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오. 당장 우리 마을 앞 하천부터 살리고, 우리 동네 쓰레기부터 줄이는 구체적인 '실천'이 중요하오. 낫을 들고 김매기를 하듯, 우리 손으로 직접 지구를 가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겄소.
5. 이인국 (냉철한 혁명가)
혁명은 감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오. 지구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는 인류 생존이 걸린 절대적인 과업이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선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 체계적인 '통제'가 필요하오. 나는 전 지구적인 '탄소 배급제'와 '자원 사용 총량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오. 불편과 반발이 있더라도, 인류 전체의 생존이라는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감수해야 하오. 목표를 위해서라면 비정한 결단도 내려야 하는 법이오.
6. 서민수 (권력 지향가)
나는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빨갱이들을 소탕했을 뿐이오.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무리는 누구든 용납할 수 없지. 지금 '환경 운동'이라는 것도 수상쩍은 구석이 많아. 국가 경제를 흔들고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이 분명 배후에 있을 것이오. 지속가능 발전? 좋지. 하지만 국가의 성장과 안보를 해치면서까지 추진해서는 안 되오. 나는 먼저 강력한 '녹색 기술'을 개발하여 국부를 창출하고, 그 힘으로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보오. 질서 없는 발전은 혼란만 가져올 뿐이오.
7. 곽재식 (기회주의 지주)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힘 있는 쪽에 붙어서 내 재산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예전에는 미군정이 힘이었고, 지금은 '돈'이 힘이지. '지속가능 발전'이라... 그거 돈이 되는 일인가? 탄소배출권 거래다,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다 뭐다 해서 새로운 돈벌이가 생긴다면야 나도 얼마든지 찬성일세. 나는 이 새로운 판에서 어떻게 하면 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네. 지구의 미래? 글쎄, 내 재산이 불어나는 한, 그 미래도 나쁘진 않겠지. 결국 모든 것은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법이라네.
8. 양씨 부인 (시대의 희생자)
나는 그냥 밭 갈고 자식들 밥해 먹이며 살고 싶었을 뿐인디... 세상이 이리 시끄러워 아들도 잃고 남편도 잃었소. 좌익이 되믄 어떻고 우익이 되믄 어떻단 말이오. 그냥 다 같이 배 안 곯고 살믄 되는 것을... 지금 지구가 아프다는 말도 꼭 그때 같소. 높은 사람들 싸움에 우리 같은 아낙네들 등만 터지는 거지. 지속가능 발전이고 뭐고, 나는 그냥 내 손주들이 맘 놓고 숨 쉬고, 깨끗한 물 마시고, 제 땅에서 난 곡식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겄소.
9. 정하섭 (생존하는 민중)
나는 이념 같은 건 잘 모릅니다. 그저 이쪽이 득세하면 이쪽에 붙고, 저쪽이 득세하면 저쪽에 붙어서 목숨만 부지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세상이 무서우니까요. '지속가능 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을 해야 먹고 산다는 사람들도 있고, 환경을 지켜야 산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 같은 보통 사람은 누구 말이 맞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이 문제로 또다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저 조용히, 무사히 살고 싶을 뿐입니다.